강원 고성군 거진읍 건봉사로 723 금강산 건봉사 적멸보궁 부처님진신치아사리
불이문(不二門)
건봉사 전체 가람의 정문에 해당하는 불이문은 1920년대 건립한 것으로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6.25전쟁때 완전히 폐허가된 건봉사에서 불타지 않은 유일한 일주문이기도 한 불이문은 해탈의 문이라고도 하는데 버뇌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뜻하는 문이다.
건봉사 터에 남아 있는 불이문은 팔작지붕 전면과 측면 각1칸의 규모이다. 기단은 모를 죽인 장대석 위에 상면은 배흘림 수법이 가미된 원통형 전면 기둥에 금강저(金剛杵) 가운데 세개의 가지를 가진 삼고저를 새겼다.
지붕의 네 모퉁이에 용두가 있으며 전면 처마 밑에는 '불이문'(不二門) 현판이 걸려 있다. 글씨는 조선조 마지막 왕세자인 영친왕의 스승이자 큰 글자를 특히 잘썼던 근대화가의 해강(海岡) 김규진 선생이 쓴 것으로 유명하다. 천정에는 '불이문 중건단청 대시주' '설암담봉흔' 불기2955년(서기1928년) 무진4월일'이라 묵서로 쓰여진 현판이 있다.
건봉사 연혁
금강산 감로봉 기슭에 위치한 건봉사는 520년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원각사라 하였으며, 758년 발징화상께서 중건하고 염불만일회를 베풀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염불만일회의 효시가 되었다. 여기에 신도 1,820인이 참여 하였는데, 그중에서 120인은 의복을, 1,700인은 음식을 마련하여 염불인들을 봉양하였다. 787년 염불만일회에 참여했던 31인이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어서 극락왕생 하였고, 그뒤 참여했던 무든 사람들이 차례로 극락 왕생했다고 한다. 이로서 아미타 도량이 되었다. 고려초 도선국사가 절 서쪽에 봉황새 모양의 바위가 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서봉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1358년에는 나옹화상께서 중건하고 건봉사로 개칭하여 비로소 염불과 선. 교의 수행을 갖춘 사찰이 되었다. 1465년에는 세조가 행차하여 이 절을 자신의 원당으로 삼은뒤 어실각을 짓게하고 전답을 내렸으며 친필로 동참문을 써서 하사하였다. 이때부터 조선왕실의 원당이 되었는데 성종은 효령대군, 한명회, 신숙주, 조흥수 등을 파견하여 노비, 미역밭과 염전을 하사하고, 사방 십리안을 모두 절의 재산으로 삼게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사명대사가 승병을 기병한 곳으로 호국의 본거지가 되었으며, 1605년에는 사명대사가 일본에 강화사로 갔다가 통도사 등에서 왜군이 약탈해 갔던 부처님 진신치아사리를 모셔와서 이 절에 봉안한뒤 1606년에 중건하였다. 1802년에는 용허 석민 스님이 제2회 염불만일회를 열었으며, 1851년에는 벽오 유총스님이 제3회 염불만일회를 열었고, 1878년4월3일에 산불이 일어나 건물 3,183칸이 전소 되었는데, 다음 해에 대웅전, 어실각, 사성전, 명부전, 범종각, 향로전, 보안원, 낙서암, 백화암, 청련암을 중건하였다. 1881년에는 만화 관준 스님이 제4회 염불만일회를 회향한 뒤 음암 의훈스님이 제5회 염불만일회를 개설하고 옛부터 있던 돌무더기의 소신대에 31인의 부도를 세우는 한편 1921년 인천포교당과 봉림학교를 세웠으며, 한암선사를 청하여 무차선대회를 여는 등 우리나라 4대 사찰의 하나요 31본산의 하나로서 명망을 떨쳤던 곳이다. 6.25 한국전쟁때 이절은 화재로 인하여 완전히 폐찰화 되었는데, 당시까지 현존하던 당우로는 총642칸과 보리암, 봉암암, 극락암, 백화암 등 124칸의 부속암이 있었다. 중요 문화재로는 도금원불, 오동향로 2, 철장, 대종, 절감도, 차거다반, 고승영정 44점 등은 없어지고 불사리탑등 탑 8기, 31인의 소신대 부도를 비롯한 부도 49기, 비 33기, 등과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불이문과 그 밖에도 능파교와 십바라밀을 상징하는 조각이 새겨진 두개의 돌기둥,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새겨진 석주등이 남아 있다.
능파교(아름다운 무지개 다리)
국가보물 제1336호, 능파(凌波)란 가볍고 우아한 아름다운 미인의 걸음 걸이를 뜻하는 말로 고해의 파도를 헤치고 해탈의 석가모니부처님 세계로 건너 간다는 의미가 있다. 능파교를 처음 축조한 시기는 숙종30년(1704년)부터 숙종 33년 (1707년)사이이다. 석교의 규모는 폭3m, 길이14.3m, 높이 5.4m이나 된다. 형태는 중앙에 지름 7.8m, 높이4m의 구름다리로 구성되어 있고 좌우에는 장대석으로 날개 벽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적멸보궁 가는 길
적멸보궁(진신치아사리탑을 봉안한 사찰)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치아사리를 모시고 있는 사찰을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한다. 이 적멸보궁 뒤쪽에는 석가모니 진신치아사리탑이 모셔져 있는데 선조38년(1605년)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모셔온 석가모니 부처님의 치아사리를 봉안한 탑으로, 경종 14년(1724년) 에 건립되었다. '적멸보궁' 뒷편 오른쪽 앞에 건립되어 있는 치아사리탑은 방현의 지대석에 기단부는 팔각형으로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을 완전히 구비하고 있는데 하대석에는 복련, 상대석에는 양련 등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탑신의 높이는 53cm의 구형인데 표면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옥개석은 팔각형으로 낙수면과 상면이 별도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한개의 돌로 조각된 상륜부는 연국문대, 편구형부재, 상단에 여의두문이, 하단에 화문이 새겨진 부재가 있고 사리탑 높이는 1.6m이다. 지금의 적멸보궁은 1994년 5월25일 준공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 진신치아사리(사명대사가 일본에서 찾아온 보물)
이곳에 봉안된 사리는 석가모니 부처님 진신치아사리라고 합니다. 신라시대 자장율사께서 선덕여왕 5년(536년)에 칙명을 받아 문인 실등 10여명과 함께 당나라로 건너가 청량산에 들어가 그곳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범어로된 게송과 석가세존의 진신사리와 금관가사 구엽경 등을 나누어 가지고 환국하여 일부는 오대산 월정사아 통도사에 봉안하였는데 임진왜란때 왜병들이 양산 통도사 금강계단을 부수고 약탈해간 진신치아사리 12과를 왜란이 끝나고 정유재란과 임진왜란으로 일본으로 잡혀간 포로송환등의 강화문제로 선조 38년(1605년)사명대사가 임금님의 명을 받고 일본에 건너가 통도사 사리를 다시 모셔와 건봉사에 봉안하게 되었다.
십바라밀 석주(十波羅蜜 石柱)
십바라밀 석주는 다른 절에서는 볼수 없는 것으로 시각적인 교육 효과를 지닌 중요한 문화재이다. 십바라밀은 피안 즉 열반에 이르기 위하여 보살 마하살이 수행하는 여섯가지 즉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6 바라밀에다 방편 원 력 지의 4바라밀을 첨가한 것으로 그 하나하나에 깊은 의미가 간직되어 있다.
대웅전(사찰에서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봉안한 법당)
대웅(大雄)은 위대한 영웅 즉, 부처님을 말한다. 석가모니불은 세상에 태어나 법을 깨닫고 중생을 구제한 부처로서 왼손을 무릎 위에 놓고 오른 손을 내려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석바모니불을 모신 집을 대웅전 또는 대웅보전이라고 한다.
<건봉사 및 건봉사 사적지>에 따르면 1879년 4월3일 산불로 사찰과 암자 3,183칸이 전소되고 이듬해인 고종16년(1879년) 대웅전을 중건하고 7월에 단청하고 후불탱화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때 왕실과 각 궁, 재상으로부터 불구와 금품을 기증받았다고 한다. 지금의 대웅전은 한국 전쟁때인 1951년 5월 폭격으로 소실된 건물을 1994년에 복원한 것이다. 전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으로 이루어진 건물이다.
명부전(지옥에 갈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전각)
고종16년(1879년) 대웅전 중건때 함께 중건된 전각으로 크기는 6칸으로 전한다. 명부전의 '명부'는 지옥세계를 의미한다. 명부전을 지장전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명부의 주인이 지장보상이기 때문이다. 건봉사 명부전에는 6.25 전쟁때 이지역에서 순국한 군인 영가들의 위패 약1,300위가 모셔져 있다.
나무아미타불 석주
이 석주는 이곳 전봉사가 아미타 도량임을 뜻하며 위 봉황상은 이 절의 상징물로서 참배객의 경배의 대상물이다. 불기2955년은 북방 불기로 서기1928년에 해당된다. 우리나라는 1962년 까지 북방 불기를 사용하였고, 현재는 남방불기를 사용한다.
부도군(50기가 넘는 붇가 모여 있는곳)
건봉사 입구에 도착하면 사명대사 동상이 있고 바로 그 건너 편에 건봉사에서 주석 하시다가 열반하신 스님들의 부도군이 모습을 드러낸다. 부도군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기면 50기가 넘는 부도와 12기의 비가 있어 경건하고 숙여해 지는 마음이 절로 든다. 부도중 특히 유심히 살펴 보아야 할 것은 만일회 당시 생사리탑인데 이는 철종 5년(1851년)에 개설한 만일회에 참여한 승려10여명이 1854년 부터 1856년까지 3년 동안 살아 있는 몸에서 치주, 안주 등의 생사리 26매를 내어 놓은 이적을 나타냈는데, 이를 함께 모아 부도에 모신 곳이다. 건봉사 역사를 기록한 사적비 1기와 만일회 연기를 밝힌 비2기, 공승의 생애 및 기념 할만한 사실을 적이 놓은 비8기가 군수위 영세불방비 2기가 세워져 있어 대찰이었음을 한눈에 알수 있다.
사명대사 동상(임진왜란 승명을 모집한 의승장)
건봉사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사명대사 동상이 있는데 금강산 오대산등에서 수행 했으며 임진왜란 승명을 모집한 의승장이었고, 탁월한 외교가이기도 하였던 사명대사의 업적을 기리고자 높이1.2m, 둘레3m의 동상을 세웠다. 또한 임진 왜란때 사명대사에 의 한 승병 봉기처이기도 했던 것을 기념하여 2003년 9월에는 사명대사 기념관도 건립하였다.
* 본 내용은 금강산 건봉사 안내 팜플릿에서 인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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